뚝섬한강공원에서 즐기는 야외 조각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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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에스프레소] 쓰레기는 되지 말자

  • 23-09-20

누군가 많이 찔렸던 모양이다.

설치미술가 이광기(52)씨가 제작한 ‘간판’ 하나가 지난달 뚝섬유원지역 인근 철교 밑에 나붙었다. 짧은 텍스트만으로 관람객의 인식을 건드려온 작가답게 단순 명료한 여덟 글자였다. 쓰·레·기·는·되·지·말·자. 한강공원 일대에서 10월까지 진행하는 ‘한강 조각 프로젝트’ 출품작으로, 오가는 인파에게 여러 상념을 유도하는 경구(警句)였으나, 즉각적인 항의에 먼저 부딪혔다. “기분 나쁘니 치워 달라”는 시민들의 민원이 서울시 다산콜센터와 국민신문고로 접수된 것이다. 나는 의아했다. 이 민원의 함의는 대체 무엇인가. 그냥 쓰레기가 되도록 내버려두라는 부탁인가, 이미 쓰레기인데 뭐 어쩌라는 반발인가. 행사 조직위원회 측은 기민하게도 일주일 뒤 해당 작품을 뜯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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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뚝섬유원지역 인근 철교 밑에 내걸렸다가 시민들의 항의 민원으로 철거된 여덟 글자. 설치미술품이다. /이광기 작가 제공 
 

착하게 살지는 못해도 악당은 되지 말자는 이 최소한의 권유는 4년 전 부산에서도 거부당한 바 있다. 당시엔 ‘바다미술제’가 열린 다대포해수욕장 인근 다대쓰레기소각장 외벽에 설치됐는데, 일부 주민이 “이게 무슨 예술이냐” “우리를 쓰레기 취급하느냐”며 철거를 요구한 것이다. 당초 LED 조명으로 고깃집처럼 야간에도 불을 밝힐 예정이었으나, 항의가 계속되자 소등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에게 전화해 작품 의도를 물어봤다. “사람마다 지닌 쓰레기 같은 본성을 제어하자는 나 자신의 다짐과도 같은 문구”라고 설명한 뒤 작가는 말을 이었다. “부산이 어찌 보면 서울보다는 지방 아닙니까. 혹시 서울은 다를까? 이런 생각도 없지 않았죠. 그런데 별거 없더라는 겁니다.”

대중의 호오(好惡)가 다 같을 수는 없다. 단어나 문장만으로 전시 공간을 채우는 미국의 바버라 크루거, 제니 홀저 등의 작품 유형을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쓰레기’라는 표현을 다소 도발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 저게 뭐냐고, 황당해할 수 있다. 그렇다고 결사반대를 부르짖는 것은 다른 양태다. 해석 자체를 거부하는 적개심이니까. ‘쓰레기는 되지 말자’는 말이 대단히 창의적이거나 난해한 구호인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건 양심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부산이든 서울이든, 과거든 현재든, 이 상식적인 권유를 대하는 민도(民度)에 변화가 없다는 점은 슬프기까지 하다.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아이작 싱어의 소설 중에 ‘인간쓰레기’가 있다. 유부남 신분을 속인 채 간음하고 야비한 범죄에 가담했으며 결국 사람까지 죽이고 감옥에 감으로써 반성 없는 자의 운명을 깨닫는 주인공, 그를 통해 인간의 자유 의지를 이야기한다. 그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탐욕에 번번이 패배했다. 선(善)의 의지를 포기한 대가로 쓰레기가 됐다. 의지는 반성의 동의어다. 그러나 이 책이 아무리 명저(名著)여도 혹자는 화를 낼 것이다. 누구를 인간쓰레기 취급하느냐며, 도서관에서 책을 치우라고 민원을 넣을 것이다. 읽어보지도 않고. 결국엔 각성이 필요 없는 말, 부역하는 언어만 살아남을 것이다. 그것이 쓰레기다. 이미 차고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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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란의 여덟 글자는 한 글자가 줄어 이렇게 바뀌었다. 이 문장 앞에서 뜨끔할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쓰레기는 되지 말자’는 권유는 강요여도 무방할 것이다. 이건 양보도 철거도 안 되는 가치다. 이후 한강 다리 밑 ‘쓰·레·기·는·되·지·말·자’는 이광기 작가의 다른 텍스트 설치 작품으로 바뀌어 걸렸다. 일곱 글자다. 그·때·왜·그·랬·어·요. 이번에도 누군가는 많이 찔릴 것이다. 괜히 엉뚱한 데 화풀이하지 말고, 그때 왜 그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자. 그것이 최저(最低)를 면하게 할 최소한의 방도일 것이니.